악마에서 벗어나다

L.A에서 미세스 리

지금 내 나이 50,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반은 도박을 하고 살아 왔다. 한국에 살 때 에는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려 고스톱으로 세월을 보냈으며 10년 전 이곳 L.A에 와서는 겨우 마음을 잡고 살았든 게 2년여의 세월.

8년 전 봄의 어느 날, 이웃집 아줌마의 부탁으로 차를 세워다 준 곳이 L.A 근교 에 있는 카지노였다. 휘발유에 불을 던진 것이다.

얼마나 좋았든지 매일매일 출퇴근을 했다.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나는 알바가 아니었다. 자식도 관심 없으며 남편도 관심 없었다. 내 사랑은 오직 도박뿐이었다.

4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을 때 내 손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도박에 대한 열정 이 깊어가면 갈수록 나에게 더 독이나 침이 될만한 말 한마디와 멸시하는 눈초리들 과 냉소 뿐....

"다들 죽어 버려라." 나는 어느새 도박에 대해 빠져들면 들 수록 내 주위의 모든 이들 을 향해 독침보다도 더 강한 저주의 말들을 서슴없이 퍼붓는 더러운 인간이 되어 가고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여성 잡지책에 도박중독자의 수기를 보게 되었고 나는 너무 놀라움에 그 곳엘 당장 달려가게 된 것이 L.A에 있는 G.A 모임이었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 우린 모두 심각한 정신병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도박에 대한 열애가 대단한 때여서 가슴에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몇 번 참석했지만 계속 나갈 수가 없었다. 아마 끊고 싶은 마음보다는 계속하고 싶은 열망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으리 라. 그러나 그 때 내 가슴속에는 나도 몰래 단 도박의 씨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줄이야....

그 후 2년 나는 계속 도박에 미쳐 내 생명 모두를 도박에 바쳐 산 삶의 연속이었다. 어떤 돈이든 다 끌어다가 도박밑천으로 밀어 부었고 빚은 빚을 낳고 거짓은 거짓을 낳고 나는 정말 확신 할 수가 있는 악마가 되어 있었다. 그 때 내 심정은 견딜 수가 없었다.

1. 나는 죽어야겠는데

2. 마음속에서는 살려 달라고 하고

3. 도박을 끊는 길은 죽음뿐이었는데

4. 왜 나는 살고 싶어할까?

미친 듯이 일을 해서 돈을 손에 쥐는 순간 도박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나는 사람이 아니고 악마였다. 정말 그대로 녹아 없어져 내리고 싶었다. 이미 내 영혼은 나의 것이 아니였으며 악마의 것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숨겨 놓은 돈을 발견했었다. 그대로 쥐고 도박장으로 달려가서는 몇 시간 만에 다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 갈 수가 없었다. 울부짖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 처참할 것 같아 차를 몰고 바닷가에서 이틀 밤을 지새며 난 내 인생을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G.A를 떠 올렸으며 바로 그곳이 내가 살 수 있는 곳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 노름장이는 노름장이 끼리 장사꾼은 장사군 끼리 ..... 바로 그것이다. 단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단도박을 하는 사람들끼리 ...... 왜 그렇게 간단한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되었을까? 그래, 그곳에는 도박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왜 나는 그분들을 2년 전에는 볼려고도 하지 않았을까? 너무도 어리석었구나. "가자. 남편에게 빌고 또 빌자. G.A에 열심히 나가 보자. 그 사람들을 따라가 보자." 집으로 돌아 온 뒤 남편에게 내 심정을 그대로 이야기 했드니 "그래? 다시 한번 속아 주지." 그 말뿐이었다.

그 후 나는 정말 G.A에 꼬박꼬박 참석하면서도 또한 도박을 끊지 못하고 게속 도박을 하는 상태였다. 어느 날은 모임에서 욕을 진탕 얻어먹고 그렇게 끊지 못하고 매일 도박을 하고 여기를 오면 우리 같은 중독자에게 얼마나 큰 유혹이 되는지 알기나 하느냐며 그렇게 도박을 할 것 같으면 나오지 말라고 고함을 쳐서 화가 치밀어 올 라 싸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가 살 곳은 이곳 뿐이다` 라는 생각에 꾹 참았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G.A에 열심히 참석하며 우리 노 선생님 백 신부님 모습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그 분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언제나 일직 나와 봉사하는 그 분들의 모습에 내 자신을 비추어보니 나는 언제나 늦게 나왔고 삐딱한 말만 하는 부정적인 인간이지 않았던가? 부그러웠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 분들의 뒤를 나도 따라 가자. 모방이라도 해 보자. 나도 그 분들처럼 일찍 나와서 커피라도 빼 놓는 인간이 되자. 내 삶의 방식부터 조금씩 조금씩 바꾸기 시작하자.

차츰차츰 도박의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했고, 조금씩 조금씩 빚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도박장에 가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잃어 버렸던 미소를 찾게 되었고 잃어 버렸던 말들을 찾게 되었다. 나의 도박 병은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 분들에게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 할 때마다 "너무도 잘한다. 너무도 잘 한다." 참 잘하고 있다는 대답에 나는 신이 났다. "정말정말 안 할 거야. 그것을....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실망도 주지 말자." 나는 오늘도 다짐하고 다짐한다.

이 세상에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 보이지 않는 생각까지도 고정된 것 없이 사라지고 만다. 모든 것이 찰나 찰나 지나갔다가 없어지는 것 그 무엇에다가도 내 마음을 담아두지 말자. 어느덧 단도박 1년,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졸필을 놓는다.

1997. 7. 15

* 추신 : 단도박 1주년. 그렇게 멀리 느껴지더니, 나는 드디어 오늘 일년을 맞이 했다. 지금은 존경하는 항상 가까이서 뵙고 싶은 백신부님이 이 자리에 안 계신 것 외에는 (여름 휴가중이심) 아주 오랜만에 가슴속에 넘치는 `기쁨의 환희와 모든 근심걱정이 없는 평화로움` 속에서 난 평온을 만끽하고 있다.

성 그레고리오 화관앞 성모상이 오늘따라 나에게 미소를 띄우신다. "참, 보기가 좋구나."하시는 듯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그저 앞에 있는 이웃들 (G.A) 가족들의 모습이 다정하고 따스하고 고마울 뿐이다.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이라곤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